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 (문단 편집) == 결말 == [[장지량]] [[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|공군참모총장]]과 [[강기천]] [[대한민국 해병대사령관|해병대사령관]]이 현지에 달려갔고, [[대한민국 국방부|국방부]][* [[김성은(군인)|김성은]] 당시 [[대한민국 국방부장관|국방장관]]은 [[해군사관학교]] 1기로 임관하고 해병대 창설에 기여하여 해병대사령관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'''현재까지 유일한 해병대 출신 국방장관'''일 정도로 골수 해병대이다.]에서는 합동수사반을 구성하여 현지조사에 나서게 하였으며, 해병 20명과 공군 14명을 연행하여 조사하였다고 한다. 지금은 많이 잊히고 ~~[[해병문학|....정말 그럴것 같나?]]~~ 해병대 출신의 회고글 혹은 해병대의 각종 야사 썰들을 모아 놓은 해병대 출신들의 블로그 등에서나 언급되는 정도이지만, 사건이 발생한 당시에는 주요 일간지에 관련 기사가 도배가 될 정도로 엄청나게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었다. 정부와 군 상층부에선 처음에 관련자 전원을 군사재판에 회부한다고도 했으나, 당시에는 [[베트남 전쟁]] 상황이라 장교들이 많이 필요한데 관련자가 너무 많아서인지 핵심 주동자들만 군사 재판에 회부하고 나머지는 처벌을 면하게 된다는 정신 나간 일을 저지른다. 왜 정신 나갔다 하냐면 [[실미도 사건]]참조. [[전도봉]]을 비롯한 주동자급 해병 장교 10여명은 6개월 간 진해 해군 헌병대(현 군사경찰대) 영창에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았는데, 결국 제일 '''핵심주동자였던 전도봉 소위만 현역부적합 조기전역을 당했고''' 나머지는 현역 장교로 복귀하게 된다.[*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장교 인원 부족 때문에 편법으로 용서해준 것이고 이걸 핑계로 없는 일 친 것이다. 그럼 실미도 사건은 왜 민간인 신분임에도 죽여 드는가? 김성은 같은 인간이 두둔하니, 그렇게 스리슬쩍 넘어간 것을 생각하기 힘들까?]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뒤 전도봉에게 현역 [[대한민국 육군]] 병 입영통지서가 발부되었고[* 실제 복무 기간이 짧아서 군역을 필한 것으로 인정할 만큼의 기준을 못채웠기 때문에 병역의무가 여전히 남아있게 된 것이다. 사실상 이걸 반역죄로 취급도 안 했고, 아니라면, 군복무를 처벌로 하는 징병제하는 나라가 나라망하는 소리를 한 것이다.] 이에 전도봉은 장교로 군복무했던 사람이 뭔 현역병이냐고 반발하여 병 입대 대신 해병대 장교로 재입대하였고 결국 해병대 간부후보생(해간) 38기 소위로 다시 임관하게 된다. 즉 '''두 번이나 임관하게 된 것'''이다. 하지만 그 때문에 첫 임관 때의 동기들(해간 35기)보다 후배(해간 38기)가 되었다. 결과적으로 전도봉에겐 두 개의 해간 기수가 있는 셈인데 그 중에서 38기가 정식 기수이다[* 35기로서의 군생활은 조기에 끝나버렸으므로]. 그러나 '''언론 공개 이력 등엔 첫 번째 기수인 해간 35기만을 내세우고 있다.'''[* 35기생들도 전도봉을 동기로 인정하고는 있다. 당초에 전도봉이 35기 중에서도 제일 리더격이었기 때문이다. 그리고, 이 35기생들은 해병대를 망친 쓰레기 집단 취급할 근거가 되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